통찰로 경영하라
통찰로 경영하라
통찰로 경영하라저자김경준출판원앤원북스발매2014.04.25.
1. 철도 산업과 시테크
근대 경영의 관점에서 시간의 개념은 19세기 철도의 역사와 함께 시작됩니다. 과거에는 체계적이고 정교하게 표준시간을 설정하지 않고 대충 정해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철도망이 발달하고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정확하게 운행하기 위해서는 뉴욕, 보스톤, 시카고 모두 동일한 표준시간에 맞추어야 합니다.
즉 철도시간이 되면 10분의 오차가 대형 사고로 이어지기에 시간을 정확하게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생겨나고, 이것이 근대 경영의 기본 개념이 되었다는 것이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의 관점입니다. 1990년대 시테크란 단어가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업의 시간 원가를 분석하면 임원의 1분은 500원, 과장의 1분은 250원, 대리의 원가는 150원으로 산정하고 10분 동안 커피를 마시며 노닥거리면 수천 원이 깨지고, 결국 원가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내용입니다. 시테크라는 단어가 나타내듯 이제는 시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효과적으로 집중하는 것이 테크놀로지가 되었습니다.
피터 드러커는 “측정할 수 없는 것은 관리할 수 없고, 관리할 수 없는 것은 개선할 수 없다.”라는 경영학의 유명한 명제를 남겼습니다. 마찬가지로 기업을 포함해 어떤 조직에서나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하고 관리하고 개선하는 것은 모든 활동의 근간이 됩니다.
2. 메멘토 모리와 카르페 디엠, 삶과 죽음을 대하는 사생관
로마는 국가를 구한 전쟁영웅에게 수도 로마에서 개선식을 거행할 수 있는 명예를 부여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개선식이 열리는 하루는 인간으로서 최고의 성취를 인정받고 로마 시민으로서 최고의 영예를 얻는 그야말로 인생 최고의 날입니다. 그런데 이 개선식에는 특이한 전통이 하나 있었습니다. 환호하는 시민 사이를 자랑스럽게 행진하는 개선장군의 바로 뒤를 노예가 따라 걸으면서 “메멘토 모리”를 계속 외치는 것입니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인데, 인생 최고의 날에 일종의 초치는 내용을 바로 등 뒤에서 외치면서 졸졸 따라다니는 셈입니다. 이러한 행위의 의미는 ‘인간으로서 최고의 영예를 받고 신의 경지에 오른 듯 느껴지지만, 너 역시도 언젠가는 죽는 인간의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교만에 빠지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항상 잘나갈 때 조심해야 합니다.
카르페 디엠은 가장 유명한 라틴어 경구 중 하나입니다. ‘오늘을 잡아라’로 직역되는 이 문구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학생들에게 오늘을 즐기라는 의미로 되풀이해서 강조하면서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카르페 디엠은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구 중 “현재를 즐겨라. 가급적 내일이란 말은 최소한만 믿어라.”의 부분 구절입니다. 운명은 신의 영역이므로 미지의 미래를 고민하지 말고 오늘에 집중하라는 의미입니다.
메멘토 모리의 ‘죽음을 기억하라’와 카르페 디엠의 ‘오늘을 잡아라’는 외견상 상충되지만 맥락은 동일합니다. 유한한 인생, 소멸되는 운명 속에서 인간의 유한성을 자각하되 오늘의 삶에 충실하라는 뜻입니다.
잘 살아온 사람이 잘 죽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삶과 죽음에 대한 관점, 즉 사생관이 인간의 품격을 유지하는 기본 바탕이라 생각합니다.
3. 이해관계
결국 개인과 조직의 역학관계를 이해하는 핵심은 대의명분이 아니라 이해관계가 핵심입니다. 논리는 입장에 종속되고, 입장에 따라 논리는 만들어집니다. 유리하면 정의이고, 불리하면 불의입니다. 같은 남녀관계라도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이야기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거창한 명분은 통상 거대한 이익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논리보다 이해관계를 파악해야 본질이 보이고 적절한 대응책을 만들 수 있습니다. 세상살이의 기본은 객관적인 사실관계와 인과관계를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객관성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사실관계의 파악도 쉽지는 않지만, 원인과 결과의 인과관계는 그야말로 이해관계의 틀 속에서는 파악하기도 어렵고, 설사 파악했다고 하더라도 왜곡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을 대할 때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지 않고, 이해관계의 사슬에서 벗어나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자세가 기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_ pp.212~213
4. 합리적인 낙관주의
사람이나 기업은 부침을 겪기 마련입니다. 부침을 겪으면서 인생이 깊어지듯이, 위기를 극복하면서 조직이 강해지는 것은 고금의 진리입니다. 부침과 위기 자체보다 이를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짐 스톡데일 장군은 베트남 전쟁에서 포로가 되어 8년 동안 수용소에서 생활했습니다. 20차례 넘게 고문을 받았지만 고통스런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동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으며 끝까지 살아남았습니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수용소에서 가장 일찍 죽는 사람은 비관론자가 아니라 근거 없는 낙관주의자였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일종의 최면을 걸고 희망을 불어넣다가 좌절되면 실망하고, 다시 막연한 희망을 갖고 기다리다가 끝내 극단적인 실망에 빠져 죽음에 이른다는 겁니다. 반면 분명히 풀려난다는 신념을 가지되, 단기간 석방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수용소 생활을 견뎌냈다고 합니다. 이후 사람들은 극한 상황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합리적 낙관주의를 스톡데일 패러독스라고 부르기 시작합니다. 낙관주의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합리적 낙관주의만이 엄혹한 현실을 직시하고 위기를 이겨낼 에너지를 만들 수 있습니다.
5. 엄홍길 대장의 원정에 동참해서 느낀 프로세스의 힘
엄 대장의 원정에 동참하면서 산악인의 고산 등반, 경영자의 사업 운영, 지휘관의 전투 수행은 모두 동일한 성격의 프로젝트라고 느꼈습니다. 계획을 세운 뒤 필요한 인원과 물자를 조달해서 현장에 투입하고, 결정적인 승부처에 자원을 집중해서 목표를 이루어내는 과정은 공통적이었습니다. 작전과 타이밍이 맞아야 성공할 수 있다는 점도 동일합니다. 고산 등반이란 대가를 바라지 않은 목숨을 건 도전이라는 측면에서 일견 무모해 보이지만, 등반 과정 자체를 보면 주어진 환경에서 제한된 자원으로 목표를 달성하는 운영체제가 뒷받침된 치밀한 프로세스 관리입니다. 고산 등반의 목표가 세워지면 행정, 장비, 식량, 통신, 의료, 기록 등 각 분야에서 역할을 해줄 사람으로 팀을 구성합니다. 그다음 돈을 구하고 물품을 준비해야 합니다. 3개월의 원정 동안 완전히 독립해 생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텐트, 산소통, 쌀과 김치부터 철사, 못, 이쑤시개까지 수백 가지 품목을 꼼꼼히 챙겨야 합니다.
히말라야에 있는 네팔로 출발하면 이번에는 등반 허가, 물품 통관, 무전기 사용 허가 등의 행정 절차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셰르파(등반 안내인)와 포터(짐꾼)를 고용하고 이들을 관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등반 준비가 끝나면 대장은 날씨와 대원들의 컨디션을 감안해 성공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결정적 순간을 선택해서 정상 공격을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눈사태나 기상 악화는 물론 예기치 않은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까지 사전에 대비하는 것도 대장의 중요한 임무입니다.
등반 대장이란 이러한 전체적 과정을 치밀하게 계획하고 준비하면서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돌발 상황을 제대로 대처해야 정상 정복과 무사 귀환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결국 큰 방향을 잡고 추진해나가는 전략과 강인한 정신력이 섬세하고 치밀한 관리 과정과 결합되어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히말라야 등반과 기업경영은 본질적으로 동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