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간관계 : 내가 성공하고 싶으면 남도 성공하도록 도와준다
자공이 말했다. “만약 백성에게 널리 베풀어서 풍족하게 살 수 있게 한다면 어떻습니까? 인仁하다 할 수 있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어찌 인하다고만 할 수 있겠느냐? 그런 사람이야말로 반드시 성인聖人일 것이다. 요임금과 순임금도 그건 오히려 어렵게 여기셨다. 무릇 인한 사람은 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도 세워 주고, 자기의 뜻을 이루고자 하면 남의 뜻도 이루게 해준다. 나와 가까이 있는 것에서부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이 역시 인을 행하는 방법이다.”
동료나 후배가 자신보다 먼저 승진을 하거나 부귀와 명성을 얻으면 배 아파하고, 꼬투리 잡을 만한 것은 없는지 샅샅이 뒤져 험담을 퍼뜨리고 다니는 사람을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평소에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역량을 주위에 나눠주며 그들이 잘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먼저 출세한 동료나 후배가 나를 이끌어주겠는가, 아니면 잘되는 것을 배 아파한 사람을 도와주겠는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 이익이 돌아올 것을 계산하여 남을 도와주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인간 세상의 이치를 설명하고자 간단한 예를 든 것뿐이다. 이익을 생각해 행동하는 것인 인仁을 행하는 방법이 아니다.
인간관계의 원칙_ 공손, 관용, 믿음, 민첩, 은혜로움
자장이 공자에게 인仁에 대해 물었다. 이에 공자가 말했다. “천하의 5가지를 실천할 수 있으면 인이 된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공손, 관용, 믿음, 민첩, 은혜로움이다. 공손하면 남이 업신여기지 않고, 관용을 베풀면 민심을 얻고, 믿음이 있으면 남들이 의지하며, 민첩하면 공로가 있고, 은혜로우면 남들을 부릴 수 있다.”
인仁은 사람과 사람이 서로 함께 하는 것이다. 공자는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실천 방법으로 5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공恭은 두 손을 마주잡은 모양으로 공손한 마음가짐을 뜻한다. 공손한 마음가짐을 지니면 내가 남을 업신여기지 않게 되니, 남 또한 나를 업신여기지 않게 된다. 관寬은 마음이 넓고 도량이 크다는 뜻으로 타인의 실수나 허물을 관대히 포용하는 마음가짐을 뜻한다. 남이 내 허물을 감싸준다면 당연히 누구나 그 사람을 신뢰하고 따르게 될 것이다. 신信은 사람 인亻과 말 언言의 합자로 사람의 말에 거짓이 없이 믿음직스럽다는 뜻이다. 나도 믿음직한 사람이 되어야겠지만, 남을 믿어주는 것 또한 신이다. 남을 믿는다면 그들이 나를 의지하게 될 것이다. 민敏은 일에 임해서 남들보다 재빠르게 처리하면 당연히 칭찬과 공로가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혜惠는 남을 사랑하고 모든 일에 슬기롭게 임한다는 말로 능히 남에게 일을 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2. 처세
공손함, 성실함, 진실함을 가져라
번지가 인仁에 대해 물으니, 공자가 말했다. “일상생활에서는 말과 행동을 공손히 하고, 일을 할 때는 성실히 하며, 대인관계에서는 진실해야 한다. 이는 오랑캐 땅에 가더라도 버려서는 안 된다.”
『논어』에 가장 많이 나오는 인仁은 나의 일상에서 동떨어져 있는 철학적 개념이 아니다. 그렇지만 실천하기가 쉬운 것도 아니다. 공손과 성실과 진실은 우리 모두가 어려서부터 자주 들어 알고 있지만, 이 세 단어를 실천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성공은 공손함과 성실함과 진실함을 기반으로 해야 오래 갈 수 있으며,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성공은 그야말로 일장춘몽一場春夢에 불과하며, 결국은 스스로를 파멸과 절망으로 이끌어갈 뿐이다.
꿋꿋이 자신의 길을 가라
공자가 말했다. “날이 추워진 뒤에야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들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 문장은 추사 김정희가 그린 세한도歲寒圖로 인해 더욱 널리 알려졌다. 세한도를 그릴 당시 추사는 제주도에 유배 중이었는데, 그의 심경과 처지는 곤궁함과 외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그런 추사에게 제자인 이상적은 청나라에 다녀오면서 구해온 서적을 두 차례에 걸쳐 보내주었다. 세한도는 추사가 스승인 자신을 잊지 않고 책을 보내준 이상적에게 답례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다. 세한도에서 추사는 이상적을 소나무와 잣나무에 빗대어 묘사했다. 그러면서 권세와 이익으로 뭉친 자들은 권세와 이익이 다하면 그 사귐이 시들해지지만 이상적은 그렇지 않았음을 칭송했다. 그와 동시에 점점 추워지는 날씨처럼 유배 중인 자신을 둘러싼 싸늘한 인심을 한탄했다.
사람의 세상살이는 온갖 역경과 고난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속에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삶이야말로 늘 푸른 소나무 같은 삶일 것이다. 단테의 『신곡』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너의 갈 길을 가라. 남들이 뭐라 하든지 간에”
자기계발
배고픔과 근심을 잊어버릴 정도로 몰입하라
섭공이 자로에게 공자의 사람 됨됨이에 대해 물었는데, 자로가 대답하지 않았다. 이에 공자가 말했다.
“너는 왜 말하지 않았느냐? 선생님의 사람됨은 분발하면 먹는 것도 잊고, 즐거움을 느끼면 근심을 잊어버려 늙음이 다가오는 것도 모르는 그런 사람이라고 말이다.”
공자가 분발하고 즐거워하는 대상은 배움이다. 배움에 몰두하면 배고픔도 느끼지 못하고, 깨달음의 즐거움으로 인해 근심조차 잊어버리니, 세월이 흘러가는 것도 잊어버리는 것이 바로 공자의 모습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을 해본 경험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하면 주위의 시끄러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고, 배고픔과 같은 인간 본능의 욕구조차 느끼지 못하게 된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일은 모두 다르다. 공자는 학문을 좋아했지만 모두가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일찍 깨닫고,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되, 일에 임하는 자세는 발분망식發憤忘食(무엇을 할 때 끼니마저 잊고 힘씀), 낙이망우樂以忘憂(즐겨서 시름을 잊음), 부지로지不知老之(나이 먹는 것도 잊어버림)를 핵심으로 삼아라.
나에게 유익한 3가지와 해가 되는 3가지
공자가 말했다. “좋아하면 유익한 3가지가 있고, 좋아하면 해가 되는 3가지가 있다. 예악을 절도 있게 하기를 좋아하고, 남의 장점을 말하기를 좋아하고, 현명한 벗을 많이 사귀기를 좋아하면 유익하다. 교만함을 좋아하고, 안일하고 게으른 것을 좋아하고, 질펀하게 어울려 향락하기를 좋아하면 해가 된다.”
좋아해서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과 해가 되는 것이 딱 3가지만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각각 3가지씩 꼽는 것은 추구해야 할 것과 그러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다. 스스로 돌이켜 생각해보라.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가? 남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는가? 스스로를 낮춰 겸손하기보다는 잘난 척하고 뽐내기를 좋아하지는 않는가? 현명한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질펀하게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주변에 가득하지는 않은가? 이 6가지에 자신을 비추어보다면 내가 지금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 분명히 보일 것이다. 지금 걷고 있는 길이 어떤지에 따라 나의 1년 후, 나의 10년 후가 결정된다.
마음공부 : 지, 호, 락은 한몸이다
공자가 말했다. “안다는 것은 좋아하는 것과 같지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과 같지 못하다.”
子曰 : “知之者, 不如好之者 ; 好之者, 不如濼之者.”
안다는 것은 미처 알지 못한 무엇인가를 알게 되는 것이고, 좋아한다는 것도 무엇인가를 좋아하는 것이고, 즐기는 것도 무엇인가를 좋아하는 것이다. 앎과 좋아함과 즐김은 사람의 행위로, 모두 특정 대상을 전제로 하는 행위인 것이다. 앎은 그 대상을 인식해가는 과정이며 좋아함은 알기는 하지만 아직 그 대상과 내가 분리되어 있는 상태이고, 즐김은 대상과 내가 한 몸처럼 어울리는 상태다. 이렇게 앎과 좋아함과 즐김의 과정은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앎에서 즐김의 길로 나아가면서 연속된다. 따라서 알게 되면 좋아하게 되기를, 좋아하게 되면 즐기게 되기를 추구해야 한다. 반면에 스스로 즐기지 못하면 좋아하지 않게 되고, 좋아하지 않는 것은 관심도 없게 되니, 결국 알지도 못하게 된다. 그래서 무지無知한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도, 즐기는 것도 없게 되는 것이다.
이익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라
자로가 성인成人에 대해 물으니, 공자가 말했다. “이익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고, 위기가 닥치면 목숨을 바치며, 오랜 가난함 속에서도 평소 지향했던 뜻을 잊지 않으면 역시 성인이라 할 것이다.”
‘이익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한다’는 뜻의 견리사의見利思義는 요즘 중국의 기업가들이 경영과 유가 사상을 결합시키면서 애용하는 경구라고 한다.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에서 이익을 눈앞에 두고도 의로움을 생각하다니 말이다. 이익을 보면 더 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기업의 경영철학이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세다. 반면에 견리사의는 내가 얻고자 하는 이익이 부당한 것은 아닌지, 내가 이익을 얻음으로써 사회에 더 큰 피해를 끼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라는 의미다. 견리사의의 의義는 마땅함이다. 견리사의는 그 이익이 내가 취해도 마땅한 이익인지, 그렇지 않은 이익인지 생각하라는 것이다.
리더십
5가지 다스림의 원칙
공자가 말했다. “천승千乘의 나라를 다스릴 때는 매사를 공경스럽게 하여 믿음을 쌓으며, 씀씀이를 알맞게 하며 사람을 사랑하고, 백성을 부리는 데는 때에 맞추어 해야 한다.”
2부 머리에는 한비자
『한비자』와 한비의 사상
법기의 사상을 집대성한 책으로 알려진 『한비자』의 저자 한비는 한나라의 여러 공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가 공자였다는 것은 한나라 군주의 핏줄이었음을 뜻한다. 하지만 그의 삶의 관해서는 출생년도조차 정확하게 전해지지 않을 만큼 알려져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그가 죽은 기원전 233년은 진시황이 중원을 통일하기 12년 전이었다. 그러므로 한비가 살았던 시기는 중원통일을 놓고 여러 나라가 약육강식의 전쟁을 벌이던 전국시대 말기에 해당되었다. 한비는 이러한 시기에 약소국인 한나라의 공자로 태어난 것이다.
한비는 한나라의 영토가 나날이 줄어들면서 국력이 쇠약해져 가는 것을 보고 한나라 왕에게 자주 글을 올려 간언했지만, 왕은 그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비는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면서 법과 제도를 세워 모든 백성들이 알 수 있게 하고, 권세로써 신하들을 부리고 인재를 널리 찾으며, 현명한 사람을 신하로 임명하여 부국강병에 애쓰기는커녕, 도리어 무능하고 음탕한 소인배들을 가까이 하면서 그들을 공로가 있는 신하들보다 더 우대하는 것을 통탄하였다. 이렇듯 부조리한 현실을 목격한 그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유가는 글로 법을 어지럽히고, 협객은 무력으로 국법을 어긴다. 나라가 태평하면 명성이 있는 학자를 총애하고, 위기에 처하면 갑옷 입은 무인을 쓴다. 지금 녹을 주고 기르는 자들은 쓸모없는 자들이며, 쓸모 있는 자들은 녹을 주고 기른 자들이 아니다.”
나라에 반드시 필요한 자신과 같은 법가의 사상가들이나 무인들은 정작 중용되지 못하고, 법을 무시하고 덕을 중시하는 유가의 사상가들을 오히려 중시하는 세태를 개탄한 것이다.
『한비자』를 비롯한 법가의 사상은 청동기 시대를 지나 철기 시대로 진입하면서 농업생산력의 확대와 그로 인한 새로운 계층의 출현, 신흥계층과 기득권을 잡고 있던 귀족들과의 갈등과 다툼 등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정신을 요구할 때 그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탄생한 사상이었다. 이로 인해 법가의 사상은 진보주의 역사관을 바탕으로 하며, 철학적으로는 유물론과 실증주의, 정치사상의 측면에서는 절대군주제를 바탕으로 하는 중앙집권제를 옹호하고 있다. 유가의 복고주의와 관념론, 봉건제에 철저하게 반대되는 입장에 선 것이 법가의 사상이었다.
한편 법을 중심에 놓고 인간의 성정을 무시한 냉혹한 통치기술을 강조한 탓에 인본주의의 입장에 서 있던 유가의 사상이 국가 이데올로기로 공식적으로 채택되었던 중국과 조선에서 『한비자』는 완전히 이단서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춘추전국시대라는 극도의 혼란을 극복하고 통일 왕조를 세우는데 그 기초가 되는 사상을 제공한 것으로 재평가되면서 『한비자』라는 책이 조명받기 시작했다. 또한 『한비자』에 나타나는 인간에 대한 냉철한 이해와 심층적 분석을 현대 기업의 인사관리 측면에 적용하려는 노력들도 있다.
한비자의 철학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한비자가 주장한 법은 현재의 성문법과 같은 법률을 포함한, 조직을 운용하기 위한 제도나 원칙을 가리킨다. 한비자가 활동하던 때는 인의仁義와 덕德의 정치를 강조하는 유가의 활동이 왕성했다. 유가가 바라보기에 인의와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던 때는 요와 순, 그리고 주나라 무왕 때였다. 그러므로 공자는 『논어』에서 끊임없이 요순시대를 그리워하고 주나라의 문화를 따를 것을 주장했다. 한비자는 세상이 변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가버린 선왕의 도道를 따를 것을 끊임없이 주장하는 유가들의 어리석은 경험주의를 비판하고,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에 발맞추어 그에 걸맞은 이론과 혁신의 사상을 갖출 것을 주장한다.
이러한 역사 진화론에 걸맞게 한비자는 역사에도 일정한 단계가 있다고 보았다. 나라와 기업에도 그 나름의 발전 단계가 있다. 우리가 흔히 분류하는 4단계가 창업, 수성, 경장, 쇠퇴다. 경장은 고치고 넓힌다는 뜻이다. 쇠퇴를 원하는 사람은 없기에 그것을 피하기 위해 경장을 하지만, 대부분 실패로 돌아간다. 그 이유는 창업과 수성 단계를 거치면서 기득권을 가진 사람이 생겨나고, 조직에는 관성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한비자의 역사 진화론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장과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해야 생존할 수 있는 현대 기업의 철학에 들어맞는다. 이는 경험에만 매몰되면 쇠퇴를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비자는 나라를 부강하게 하기 위해 고정화된 실체로서의 법을 세울 것을 주장하지만, 한편으론 끊임없는 변법變法을 내세운다. 법을 지키기만 하고 법을 바꾸지 않으면 쇠퇴한다는 것이 한비자의 역사 철학이다.
법으로 다스려라
법은 시스템이다
한비자의 법은 형벌의 의미도 있지만 포상의 뜻도 포함되어 있으며, 나아가 현대의 조직관리론이나 통치론으로 볼 수도 있다. 즉 개인의 행위와 도덕을 단속하는 규범에 머무르지 않고, 상업이나 농업을 장려하기 위한 방법 등 동기부여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군주라는 한 개인의 능력에 의지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통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비자를 비롯하여 관중, 상앙, 신불해, 신도 등 일련의 사상가들을 법가로 부르는 이유는 그들이 모두 시스템에 의한 통치를 주장하고 실천했기 때문이었다. 덕치德治와 예치禮治를 주장한 유가, 무위지치無爲之治를 주장한 도가는 한결같이 사람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반면에 법가는 제자백가의 사상 중 유일하게 시스템에 의한 통치를 주장했다.
주나라를 정점으로 제후국들이 각 지역을 다스리던 연방제의 체제가 무너져 가고, 천하통일을 위한 열강들의 침략전쟁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구체제는 시급히 개혁해야 할 대상이었다. ‘왕王-제후諸侯-경대부卿大夫-사士-서庶’로 구별된 신분사회는 이미 무너졌고, 경대부와 신흥세력이 제후와 왕의 자리를 찬탈하는 하극상이 끊이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법을 중심에 놓고 경대부를 비롯한 귀족계급의 특권을 빼앗아 대신 관료를 양성하고, 농업을 중심으로 한 민생경제를 발달시켜 이들 농민에게 부역, 세금, 병역을 지워 나라를 부국강병하게 만들자는 사상이 법가였다. 즉 법치法治의 목표는 중앙집권적 관료국가의 건설을 통한 부국강병과 천하통일이었다.
법가 사상가들이 유가에서 주장하는 예치, 인치를 반대한 또 다른 이유는 예치나 인치가 군주의 자의성에 근거하기 때문이었다. 법가가 보기에 예치나 인치는 관념의 통치였다. 이러한 통치 방식은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하나는 일정한 기준이나 원칙 없이 군주가 마음대로 다스리게 된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정치가 한 사람에게만 종속된다는 점이다. 군주가 기준이나 원칙 없이 주관적 판단에 따라 상과 벌을 내리면, 신하나 백성들이 군주에게 아첨만을 일삼게 되어 정치가 어지럽게 된다. 갈수록 사회가 복잡해지는데 군주 혼자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처리하는 것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군주라 하더라도 인식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팔을 들었다 놓는 것처럼 매우 쉽다. 윗사람의 잘못을 바로잡고 아랫사람의 사특함을 꾸짖고, 난亂을 다스려 얽힌 것을 풀고, 욕심을 물리치고 바르지 못한 것을 가지런하게 해서 백성이 지킬 규범을 하나로 하는 데는 법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또 관료가 조심하게 하고 백성을 두려워하게 하고 방탕하고 게으른 자를 물리치고 속임수를 못 쓰도록 하는 데는 형벌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형벌이 무거우면 귀한 사람이 신분이 낮은 자를 함부로 얕보지 못하며, 법이 분명하면 윗사람이 존엄해져 침범당하지 않는다. 윗자리가 존엄하여 침범당하지 않으면 군주의 위세가 강해져 그 세위를 지킬 수 있다. 그러므로 선왕이 그 법을 귀하게 여겨 후세에 전한 것이다. 하지만 군주가 법으로 다스리지 않고 자의적으로 다스린다면 위아래의 구별이 없어지게 된다.
법령을 세우는 것은 사私를 금지하기 위해서다. 다스리는 근본은 법이며 어지럽히는 근본은 사다. 법이 서면 사적인 이득을 얻을 수 없다. 사익私益을 추구하는 자는 난亂을 일으키고 법에 의존하는 자는 다스려진다. 윗사람이 법으로 다스리지 않으면 지자智者는 사적인 말을 쓰고 현자賢者는 사적인 의도를 갖는다. 윗사람이 사적으로 은혜를 베풀면 아랫사람은 사적으로 욕심을 갖는다. 그러므로 오늘날 사적인 전횡專橫을 금지하고 공적인 법을 따르게 한다면, 백성의 삶은 안정되고 나라도 다스려질 것이다. 사적인 행동을 금지하고 공적인 법을 준수하게 한다면 군대는 강해지고 적은 약해질 것이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는 법을 바르고 명백하게 세우고, 엄격한 형벌을 제사하여 모든 사람의 혼란을 막고, 천하의 재앙을 물리쳐야 한다. 그래야 강자가 약자를 침해하지 않고, 다수가 소수를 억누르지 않고, 노인이 수명을 다 누리고, 어린이와 고아가 온전히 성장할 수 있으며, 변경이 침략당하지 않는다. 또 그래야 군주와 신하가 서로 친밀해지고, 부모와 자식이 서로 감싸주게 되며, 죽거나 망하거나 포로가 되는 걱정이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최상의 공적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이를 알지 못하고 도리어 법치를 폭정이라 생각한다.
법은 군주의 통치 시스템이다. 일은 법에 비추어 그 득실을 판단하며, 말은 법을 근거로 그 시비를 가린다. 그러므로 군주는 탁월한 능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많은 이야기를 들을 필요도 없다. 법에 없는 말은 귀담아 듣지 않으며, 법에 없는 노력은 공적으로 여기지 않는다. 법은 말을 살피고, 행동을 관찰하고, 공로를 평가하고, 일에 임하는 준거準據가 된다. 오직 법만이 통치를 가능하게 된다.
한편 늘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고정불변의 법은 없다. 영원한 것은 법치 그 자체일 뿐 법의 내용은 현실에 맞추어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 법치의 목적은 부국강병으로,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법은 오히려 개혁과 발전의 발목을 잡는다. 따라서 한비자는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법을 고칠 것을 주장한다. 즉 한비자의 법은 변법變法을 포함한 개념이다. 그렇다고 해서 법을 자주 바꾸자는 것은 아니다. 한비자는 군주가 법령을 수시로 바꾸고 명령을 자주 내려 일에 지나치게 간섭하면, 나라가 곧 망할 것이라고 경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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